댓글 정책 1.0

운영 정책 | 2020/01/01 00:00 | 유령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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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밝히건데 나는 표현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람 중의 하나다. 배워오길 그렇게 배워왔고 스스로도 그렇게 느껴왔다. 때문에 사람들의 발언권이나 생각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당신이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투쟁하겠다던 볼테르의 말은, 그래서 무척 새겨듣고 좋아하는 표현이다. 그러한 내가 굳이 이렇게 글로써 댓글에 대한 정책을 남기는 것은 얼핏 보기엔 앞뒤가 맞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의 타당성은 있다.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어져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공공의 영역에서다. 개인의 영역에서 자유를 위치며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방종과 민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블로그는 공공의 영역인가 개인의 영역인가. 당연히 개인의 영역이다. 블로그는 태생적으로 운영자에게 있어 소중한 공간이며 그 누구보다 운영자 자신의 의지와 취향이 반영되어야 하는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랍시고 똥을 싸질러놓는 건 스스로의 무식함과 인격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굳이 댓글 정책을 게시함으로써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병신들이 수고를 덜하도록 돕기로 했다. 나는 이 정책에 따라 내 블로그에 남겨지는 댓글을 관리할 것이다. 게시자의 의견에 상관 없이 삭제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타인의 의견을 받거나 불만에 신경쓰지 않겠다. 억울하거나 불쾌하면 나가 놀면 된다. 주지했듯 개인의 영역이기에, 누구보다 중요시하게 여겨져야 할 것은 타인의 취향이나 의사가 아닌 내 뜻이다. 따르거나 떠나거나, 그것은 방문객들의 자유다.

 

댓글에 대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물론, 판단은 블로그의 운영자인 내 맘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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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댓글,정책

일종의 강박

nothing special | 2010/02/04 00:57 | 유령수업

내게는 일종의 강박 관념이 있는데, 무언가를 하나 즐기려면 그 배경이 되는 지식들을 미리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주를 여행하려거든 신라의 역사와 경주에 얽힌 전설, 유적지 곳곳의 의미 등을 미리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누군가의 표현이 워낙 머릿속에 강하게 와 박혀서 였을까. 언제부턴가 나는 내내 이런 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사실 내가 여행을 잘 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게으름도 있지만 이 강박 관념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현재 성경을 읽고 있는 것도 서구 문명의 뿌리인 이 책을 읽지 않으면 그 문화의 줄기와 갈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이다. 간과해버릴지도 모르는 수많은 암시와 의미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 문서를 읽지 않고서는 서양사를 시작할 수 없다. 문제는 성경을 읽으면서 기독교의 특성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관련된 서적들을 몇 권 구매했으며 이를 함께 읽어나갈 것이란 점이다(강박이 강박을 낳았다). 참고로 그 서적들의 제목은 <역사로 읽는 성서>, <사산된 신>, <예수는 신화다>, <기독교 죄악사> 등이다.

 

누군가는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것이라고 참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해줬지만, 내 생각에는 그냥 집착과 병이다. 덕분에 매서買書의 습관은 더욱 깊어져 책장은 가득 차오르고 있다. 물론 이 모든 책들을 흡수하고 제대로 소화해낼 수만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태생적 게으름과 더불어 아둔한 뇌활동은 쌓여가는 부담을 더욱 늘려만 간다. 아, 정말이지 이 강박을 어이 없앨 수 있을꼬.

보통의 존재

타인의 취향 | 2010/01/29 16:28 | 유령수업

읽다가 몇 번을 깜짝깜짝 놀랐다. 아니 이 사람, 나랑 왜 이렇게 비슷하지? 바넘효과로 인한 단순한 착각인지 아니면 정말 성격이 비슷한 건지 마구 헷갈렸다. 써놓은 글의 많은 부분에서 진솔하게 기술한 자신의 이야기, 가치관, 성격, 많은 부분에서 교집합이 이뤄졌다. 저자와 나와의 사생활 존중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겠지만, 그가 내 (성격의)도플갱어가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이석원 씨의 독서 내력도 독특했다. 원래 책을 읽지 못하다가 일단 매서買書에 취미를 붙인 후 읽기 시작했다니, 그것도 몇 년 전부터. 독서력이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그의 글은 깊고 넓었다. 하긴 그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것도 독특한 거짓말에서부터가 아니었나. 그랬음에도 그는 인디 밴드계를 평정했고 평론가들로부터 광범한 지지를 얻어냈다. 역시, 될 사람은 뭘 해도 된다 라는 옛 루저들의 한탄은 언제나 진실하다.

 

역시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남의 글과 생각을 아무리 인용해도 이야기가 헛도는 것은, 그 내용들을 완전히 체화하지 않은 채 섵부른 흉내내기에 그치기 때문이다. 서툴더라도 속에 있는 이야기, 자신의 삶을 적어내리면 그것은 명문이 된다. 이석원 씨의 글이 선명하게 읽히고 각인되는 건 그 때문이리라. 이석원 씨의 글을 읽은 후, 근래 헛돌기 시작한 내 글쓰기에 대한 반성을 시작했다.

주식과 신념

Minority Report | 2010/01/26 11:19 | 유령수업
아는 형님이 말을 건네왔다. 좋은 주식 투자 정보가 있다며 여유 자금이 있으면 투자를 하라고 했다. 수익률이 얼마인지 어떤 내용인지도 상세히 설명해줬다. 딱 보니 손해는 볼 것 같지는 않고 꽤 괜찮은 이익을 얻을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고민 끝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투자가 그렇듯 다소의 불확실성 때문은 아니었다. 노동에 의한 정당한 임금의 중요성을 소중히 여기며 부동산 투기로 인한 불로소득을 비판하는 내가 주식으로 인한 부수적 이익을 챙긴다는 것은 옳지 않아 보였다. 더군다나 주식이란 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만 등장하는 제도로서, 책임을 소액주주에게 떠넘기고 그 열매는 자본가가 챙기는 대표적인 착취 사업이 아니던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그 사업에 손을 대는 것은 내가 평소 그토록 비판하던 자본주의의 악랄함에 몸을 담그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건 내 신념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길이었다. 이런 결심으로 인해 앞으로 내가 누릴지도 모르는 수많은 경제적 풍요로움이 원천적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평소 하는 말들, 쓰는 글들에는 더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태그 : 신념,주식

성시경, 당신은 참...

타인의 취향 | 2010/01/24 11:24 | 유령수업

 

이 노래를 내게 알려준 그 아이에게, 이 노랫말의 감정이 스며들길 원했다. 성시경의 목소리로 읊조려지는 노랫말이, 나와 그 아이가 함께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바람이었고 한 여름밤의 꿈이 계속될 수 없듯, 나뭇잎이 색을 바꾸어가는 계절이 오자 나도 감정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앞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이, 그 바람의 끝을 잡고 놓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는 이 노래를 '참 좋은 노래'의 하나로 기억하게 되었다.

글쓰기와 독서

日記 | 2010/01/22 00:51 | 유령수업

짧은 기록들은 대개 마이크로 블로그에 남기기 때문에 이곳에 남기는 일이 줄어들었다. 최근 여기에 기록된 글들도 사실 상당수는 마이크로 블로그에 이미 올린 것을 이어 붙이고 다듬어서 포스팅한 것들이다. 아마 이런 식의 글쓰기는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

 

어느 기사에선가 글쓰기와 독서가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내용을 읽었다. 아직 치매를 걱정할 나이는 아니다, 라고 안심하기엔 요즘 젊은 나이에 치매가 오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말도 많고 글도 계속 끄적이고 책은 끊임없이 들춰보고 있으니, 다소 예방을 위한 조건들을 차곡차곡 실행 중인 것 같아 안심이다. 요새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책 욕심이 넘치고 있는데 서구사회 문화의 근본을 형성한 <성경>과 재작년에 사놓고 조금씩 읽어오던 <히스토리카 세계사 세트>를 꾸준히 읽고 있다. 특히 <성경>의 경우 올해 내내 읽을 생각으로 천천히 진행하고 있다. 세계사 세트는 약간 속도를 내고 있고. 더불어 이이화 선생님의 <한국사 이야기>도 함께 읽고 있다. 써놓고 보니 죄다 역사서다.

 

길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짧지도 않은 직장생활 동안 깨달은 것이라곤, 그 누구도 내 대신 요구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할 말이 있으면 직접 해야 해결책이 도출된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라는 생각을 하다간 멍하니 세월만 보낼 가능성이 높다. 새 팀장이 오고 면담을 진행할 때 요구하고자 했던 것, 내 불만사항을 다소 담아 이야기했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지만 결과는 다소 성공적이었다. 그나마 마음의 안정이 조금 되어갈 조건이 갖춰졌다.

 

다소 은둔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단순히 날씨가 추워서만은 아닌 듯하다. 혼자 있으며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더없이 편하다. 이젠 약속이 생기면 약간의 불안함이 생길 정도다. 상황에 익숙해진 것이겠지만 꽤 마음에 든다. 밀린 책도 읽고 혼자 생각할 시간을 많이 갖게 되는 것도 좋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이 삶의 방식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꽤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다.